붉은 문이 열릴 때
2장 – 초대받지 않은 방문
깜빡이는 문턱
붉은 문이 한 번 밝아지고, 한 번 어두워졌다. 집 전체가 심장처럼 박동했다. 윤지는 문지방 앞에서 카메라를 내렸다. 1장에서 찾은 두 열쇠(0과 3)는 주머니 속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바닥의 분필 원은 희미하게 지워졌고, 원 밖으로 뻗은 가는 선이 현관 액자 앞에서 멈췄다.
그때, 문 밖에서 노크가 났다—천천히, 셋.
똑… 똑… 똑…
라디오 없는 라디오가 켜졌다. “—오늘 XX군… 용의자 윤—” 잡음. 그리고 낮고 긴 웃음. 윤지는 숨을 들이쉬었다. “누구세요?”
초대받지 않은 목소리
대답은 곧장 돌아왔다. 문 밖에서, 그러나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이 집에, 네가 들어갔구나.”
“누구?” 윤지가 묻자, 바람이 답했다. “나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 중 하나.”
윤지는 현관을 향해 걸었다. 바닥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발 아래 카펫이 얇게 ‘물결’쳤다. 액자 속 가족사진은 여전히 얼굴이 도려져 있었고, 어머니의 눈만 깊었다. 그 눈동자 중앙에, 아주 작은 금빛이 반짝였다.
현관의 교환
문 뒤의 발자국은 두 개였다. 맨발과 구두. 맨발은 아이, 구두는 어른. 두 발자국이 서로 엇갈리며 문턱 앞에 겹쳐졌다. 문틈 사이 붉은 빛이 살을 스쳤다.
“열면 안 돼.” 아이의 속삭임.
“열어야 해.” 낮고 낡은 남자의 목소리.
윤지는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 라디오가 다시 켜졌다. “—기록은 거울을 따른다.”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편집된 뉴스 클립의 남자 앵커 같기도, 경찰의 단호한 말투 같기도 했다.
방문자
문이 스스로 반 뼘 열렸다. 틈 사이로 밤공기가 밀려들었다. 그리고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윤지는 그 얼굴을 처음 보는데도 아는 것처럼 느꼈다. 경찰 기록 속 남편의 사진, 그러나 더 수척하고, 더 오래 배고픈 눈.
“기다렸다.” 그가 말했다. “네가 열어줄 줄 알았어.”
“당신은…” 윤지가 묻는데, 그가 웃었다. “나는 괴물이 아니야.” 테이프에서 들었던 그 대사. 그러나 가까이서 들으니, 웃음 뒤에 묻은 금속성 향이 분명했다. 피와 약품, 오래된 사무실 캐비닛 냄새.
그의 뒤에서 작고 새끼손톱만 한 손이 문틈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아이의 손. 손바닥엔 분필가루가 묻어 있었다.
현상실로
윤지는 붉은 문에서 눈을 떼고 현상실로 달려갔다. 분필로 선이 새로 그어져 있었다. 원의 가장자리 하나에 빈칸—이름을 적는 자리. 테이프 플레이어는 전원이 꺼진 듯했지만, 녹색 램프가 아주 희미하게 살아 있었다.
윤지는 1장에선 듣지 않았던 보관 테이프를 찾았다. 금속 선반 안쪽, 부서진 라벨. ‘기록—거울’. 재생.
여성의 낮은 목소리: “문이 열리는 시간엔 모든 기록이 뒤집혀. 거울을 따라 적어. 그러면… 진짜 순서가 보여.”
뒤이어 아이가 속삭였다. “내 이름은 여기 있어.” 종이 넘기는 소리, 분필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서—’로 시작하는 미완의 호흡.
거울 방 — 반대편의 현관
2층 마지막 방, 거울은 이전과 다른 장면을 비추고 있었다. 거울 속 현관은 활짝 열려 있었고, 바깥의 밤길엔 안개가 깔렸다. 안개 위를, 맨발의 작은 발자국이 지나갔다—집 쪽으로.
윤지가 손바닥을 대자 유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가 금세 온기를 품었다. 거울 속 복도 벽에 문장이 떠올랐다. 분필가루가 공중에서 스스로 모여 글자를 만들었다.
“엄마는 괴물이 아니야. 괴물은—”
문장이 끊겼다. 대신 거울 가장자리에서 ‘3’과 ‘0’이 번갈아 깜빡였다.
서류 — 뒤집힌 피해자
복도 카펫 아래 패널. 1장에서 연 서류 봉투와는 다른 얇은 파일이 하나 더 있었다. 표지는 연필로 “초동기록(거울)”이라고 쓰여 있었다.
첫 페이지, 볼펜으로 덧칠된 상자.
피해자: 미상 → (거울) 아내
가해자: 남편 → (거울) 미상
윤지는 알았다. 누군가가 ‘두 벌의 기록’을 동시에 유지했다. 하나는 현실, 하나는 거울. 그리고 문이 열릴 때—둘이 뒤집힌다.
추적 — 맨발의 발자국
계단에 물방울 자국이 생겼다. 맨발의 발바닥 모양. 부엌 쪽으로 빠르게 이어졌다. 윤지는 손전등을 들고 따라갔다. 싱크대 창문엔 김이 맺히고, 그 위에 글씨가 한 자씩 새겨졌다.
“늦어.”
글자는 금세 사라졌다. 발자국은 부엌 뒤 틈새—지하로 이어지는 비밀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 — 금속문과 열쇠
콘크리트 냄새와 현상액이 섞인 공기가 차가웠다. 작업대 아래, 손바닥만 한 금속문이 하나 더 있었다. 열쇠 구멍이 두 개. 한쪽엔 ‘0’, 다른 쪽엔 ‘3’ 음각. 윤지는 두 열쇠를 동시에 꽂았다. 딸깍.
문 안에는 작은 보이스레코더와 접힌 흑백사진. 사진 속엔 젊은 여자가 아이를 안고 웃고 있었다. 뒷면엔 펜으로 급히 쓴 한 글자.
“서”
레코더는 자동 재생되었다.
여성: “문은 이름을 먹어. 이름을 불러야만, 나갈 수 있어. 하지만 누가 누구를 부르는지… 그건 문이 정해.”
아이: “엄마, 나 여기 있어.”
붉은 문 — 두 개의 시간
1층 복도 끝이 다시 붉어졌다. 문은 이제 반쯤 열려 있었다. 틈새에서 안개가 흘러나왔다. 라디오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기록, 거울, 00:00.” 그리고 정확히 00:00—집 안 모든 시계가 동시에 멈췄다.
문 틈 너머에서 남자가 손을 뻗었다. “나를 믿어.” 그의 손등엔 오래된 칼자국이 있었다. 동시에, 바닥에서 작은 손이 윤지의 신발끈을 스쳤다. 아이의 목소리. “내 이름 불러줘.”
선택 — 누구의 이름
윤지는 입술을 열었다. “서—”
거울방이 동시에 번쩍였다. 거울 속 윤지가 같은 음절을 발음했다. 소리가 포개졌다. 분필 원의 빈칸에 보이지 않는 손이 빠르게 글자를 그었다. 첫 획, 둘째 획, 마지막 점. 그러나 완성 직전, 무언가가 ‘지워’ 버렸다. 공중에서 분필가루가 우수수 쏟아졌다.
방문자의 본색
남자는 웃음을 거두었다. “좋아. 그럼 다른 방법을 써야지.” 그가 문을 더 밀자, 방 안의 붉은 빛이 복도로 쏟아졌다. 사진 프리뷰에 낯선 얼굴들이 번쩍였다—오려낸 눈들, 지워진 입들, 그리고 윤지의 뒷모습이 끝없이 겹쳐지는 프레임.
아이는 울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히 말했다. “엄마는 괴물이 아니야.”
라디오가 마지막으로 갈라졌다. “—용의자… 윤지.”
클리프행어 — 반대편에서 온 손
문은 더 이상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다. 그때, 거울방에서 셔터 소리가 났다. 거울 속 현관이 활짝 열려 있었고, 바깥의 안개 속에서 세 번째 손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의 것도, 남자의 것도 아닌, 가늘고 길며 상처가 많은 손.
그 손이 유리 표면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윤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유리 위에 입김이 번졌다. 그리고 글자 하나가 적혔다.
“돌/아/와”
문이 미세하게 울렸다. 붉은 빛이 살을 베듯 얇게 퍼졌다. 윤지는 깨달았다. 다음에 열릴 때, 누가 안이고 누가 밖일지—문이 스스로 정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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