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문이 열릴 때
1장 – 잊혀진 집
#반전 #스릴러 #공포
프롤로그
가을의 끝자락, 해가 저물어 가던 서울 지하철 안. 해고 통보를 받은 지 엿새, 윤지는 멍하니 휴대폰을 스크롤하다가 제목 하나에 손가락이 멈췄다.
[미제사건 파일] 십 년 전, 가족 살인사건. 사람들은 그 집을 ‘붉은 문’이라 부른다.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한다.
클릭 한 번. 화면 속 사진에는 이층 목조 주택의 현관이 어둠을 들이켠 채, 문틈에서 이상하게 붉은 빛이 스며 나왔다. 전구빛과는 다른 색. 윤지의 직업적 본능이 비상등처럼 켜졌다.
그녀는 노트북을 덮고 중얼거렸다. “좋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카메라, 녹음기, 손전등. 지도에는 기차 세 시간, 버스 사십 분, 그리고 시골길 도보 이십 분이 찍혀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세상과 끊어놓은 좌표.
마을의 경고
작은 슈퍼 앞, 담배를 피우던 노인이 그녀를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혹시… 그 집 찾는 건 아니지?”
대답 대신 미소. 노인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고개를 저었다. “문이 열리면 들어가지 마. 돌아오지 못해.”
과장 없는 목소리였다. 경고는 귓속에서 오래 울렸다.
현관의 붉은 틈
숲을 헤치고 도착한 집은, 창을 검게 칠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람도 없는데 문이 아주 조금 열리며 붉은 빛이 살결을 스쳤다. 윤지는 손전등과 카메라를 쥐고 문을 밀었다. 경첩이 끼익— 울고, 등 뒤에서 문이 스스로 닫혔다. 철컥.
먼지, 곰팡이, 썩은 나무, 그리고 희미한 금속 냄새가 한꺼번에 코를 찔렀다. 벽시계의 초침은 00:00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플래시를 터뜨리자 벽에 걸린 가족사진의 눈동자가 따라오는 착시가 스쳤고, 복도 끝 붉은 빛이 규칙적으로 깜빡였다—마치 신호처럼.
녹음 시작: “2025-08-10 / 오후 8:16 / XX군 XX리. 미제 가족 살인사건 현장. 내부 확인 시작.”
빈방, 폴라로이드, 그리고 말 없는 아이
첫 방. 허리 높이 긁힌 자국, 끊어진 끈 조각. 뒤집힌 소파 밑에서 윤지는 폴라로이드 한 장을 꺼냈다. 벽난로 앞에 등을 보인 남자, 발치의 검은 비닐, 그리고 손처럼 보이는 무언가. 사진 하단엔 볼펜으로 휘갈긴 글자 하나—‘미안해’. 뒷면 날짜는 2015.09.18.
다음 방 옷장 천장에는 작은 금속 종이 달려 있었다. 문을 열면 ‘댕’ 하고 울리는 구조. 그 순간, 윤지의 녹음기가 스스로 재생 모드로 넘어갔다. 아이의 목소리가 어둠 속 콘크리트를 타고 흘렀다.
“엄마는 괴물이 아니야. 그날 그 사람을 죽인 건 엄마가 아니야…”
파일명은 000000.MP3, 생성 시간도 00:00.
현상실의 그림자
붉은 빛이 새던 방은 버려진 현상실이었다. 말라붙은 현상액, 집게에 매달린 사진들. 그중 한 장만은 유난히 선명했다—복도에서 현관을 등진 검은 파카의 뒷모습. 카메라 스트랩, 어깨선, 머리 길이… 그것은 윤지 자신과 완벽히 같았다.
사진 하단: “문이 열리면, 너는 나다.”
그때 바닥에 작은 열쇠가 떨어졌다. 숫자 3. 벽지 뒤 금속 패널에 맞는 열쇠였다. 안에는 1·2·3 카세트테이프와 ‘엄마’라고 적힌 종이가 있었다.
테이프 1 — “엄마를 믿어줘”
플러그 없는 플레이어의 녹색 램프가 홀로 켜졌다. 1번 테이프: “오늘도 붉은 문이 열렸어… 아빠는 엄마를 괴물이라 불렀어… 엄마는 말했어, 문이 열리면 절대 나가지 말라고…”
남자의 거친 욕설, 무거운 것이 쓰러지는 소리, 마지막으로 아이의 속삭임. “누군가 듣고 있다면… 엄마를 믿어줘.”
부엌의 글씨, 숨은 지도
부엌 싱크대에서 톡, 톡, 톡 물소리가 흘렀다. 유리창 안쪽에 신선한 손바닥 자국. 곧 글자가 맺혔다—‘돌아가’. 찬장 속 현상액 병과 접힌 평면도: 1층·2층·지하 구조. 지하에 X 세 번, 옆엔 ‘문이 처음 열린 곳’. 화살표는 부엌 뒤 좁은 틈(숨은 계단)으로 이어졌다.
지하 — 아이의 공책
작업대 위 공책:
엄마는 괴물이 아니야. 문이 열리면 사람을 바꿔. 나중에 누가 오면 엄마를 믿어줘. 그리고… 내 이름을 불러줘.
끝장: 0 0 0 0 — ‘문이 열리는 시간.’
서랍에는 2번 테이프와 낡은 목걸이(펜던트 뒷면 ‘서—’).
계단 위에서 아이 같지만 어른도 아닌 목소리 속삭임—“…들어왔네.”
테이프 2 — 문을 두드리는 자
노크 소리.
남자: “문 열어. 난 괴물이 아니야.”
아이: “엄마가 열지 말랬어.”
남자: “엄마는… 이미 거기 없어.”
낮고 길게 끄는 웃음. 테이프는 바닥을 끄는 소리를 남기고 멈춘다.
붉은 문 앞
붉은 문은 구조상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다. 셔터 한 번에 사진 두 장—문틈과, 반대편에서 문 앞의 윤지를 찍은 사진. 타임스탬프 00:00, 기종은 십 년 전 모델명.
아이의 속삭임—“이름을… 불러줘.” 분필 원에서 뻗은 선이 액자 앞에서 멈춘다. 가족사진은 얼굴이 얇게 도려져 있고, 어머니의 눈만 깊다. 액자 틈 종이—‘널 기다렸어’.
2층으로
위층 난간에서 숫자 0 열쇠가 떨어진다. 아래층 라디오 없는 라디오—“용의자 윤—”이 잡음 속으로 사라진다.
거울의 집
2층 마지막 방의 전신거울 속 집은 달라져 있다. 붉은 문이 없고,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다. 문턱을 넘으려는 검은 파카의 뒷모습. 거울 속 입술이 소리 없이 말한다—‘어서 와.’ 곧 거울 속 현관문이 ‘철컥’ 닫힌다.
후반 — 0과 3의 문장
복도 카펫 아래 금속 패널. 두 열쇠(0, 3) 홈과 네 자리 다이얼. 0-0-0-0에 맞추자 패널이 열리고, ‘XX경찰서 / 2015-09-18 / 현장기록 사본’.
피해자/가해자가 반복 수정된 서류. 메모: “반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 문이 열리는 시간(00:00)에 기록은 거울을 따른다.”
테이프 3 — 첫 개방
바람 소리 뒤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 “엄마가 문을 막고 있어… 남자가 웃고 있어… 만약 누가 오면, 내 이름 불러줘. 문은 이름을 먹어.”
짧게 스치는 중년 여성의 숨 같은 한마디—“서…”
붉은 문, 처음의 열림
문이 스르륵 열린다. 분필 원과 끈, 작은 종이. 빈칸은 이름을 기다리는 서명란 같다.
라디오 없는 라디오: “용의자 윤—” 웃음소리가 귓가로 다가온다.
윤지는 문지방 앞에서 멈춘다. 0과 3—끝과 시작. 입술이 움직인다. “서…”
집 안 모든 시계가 동시에 깨어난다. 숫자는 0↔3으로 뒤집히며 움직인다. 프리뷰엔 붉은 방 한가운데 흐릿하게 웃는 아이. 화면 글씨—“어서 와, 엄마.”
현관이 쾅 닫히고, 2층 거울방에서 동시의 셔터음. 거울 속 뒷모습이 고개를 돌린다.
클리프행어 —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
붉은 방 바닥 빈칸에 분필 글씨가 저절로 새겨진다. 첫 획, 둘째 획… 이름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윤지는 그것이 자신이 잃어버린 성의 시작임을 안다—‘서—’.
종이 울린다. 댕. 문이 닫히며, 안/밖·전/후·가해자/피해자가 한순간 서로의 자리를 바꾼다.
윤지는 깨닫는다. 이 집에 들어온 사람은 돌아가지 못한다. 돌아갈 ‘자기 자신’이 바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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