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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공포] 붉은 문이 열릴 때...(프롤로그)

by 곰탱이아재 2025. 8. 13.

 

소설 〈붉은 문이 열릴 때〉

프롤로그 – 붉은 문이 열리던 날

#반전 #스릴러 #공포

바람이 불지 않았다. 그날의 공기는 이상할 정도로 고여 있었다. 한낮에도 햇빛이 얇게 비쳐들 뿐, 색은 무채색처럼 바래 있었고, 마을의 나무들은 나뭇잎조차 흔들지 않았다.

마을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숲길을 따라가면, 이층짜리 목조주택이 나온다. 짙게 칠해진 외벽은 이미 칠이 벗겨져 나무 속살이 드러나 있었고, 지붕은 검게 그을린 듯 얼룩져 있었다. 창문은 모두 검은 페인트로 칠해져, 바깥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 집을 ‘붉은 문’이라 불렀다. 이름의 이유는 간단했다. 집의 현관문이 진한 붉은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색깔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집의 문은 가끔 ‘스스로 열렸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틈이 생기고, 그 틈 사이로 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은 전구의 노란빛도, 촛불의 주황빛도 아니었다. 사람의 피부를 부드럽게 감싸는 듯하면서도, 뼈 속까지 스며드는 이질적인 색.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편한 감각이 올라왔다.

 

십 년 전, 그 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세 명, 모두 한 가족이었다. 경찰 기록에 따르면 남편이 아내와 어린아이를 살해한 뒤,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아니, 믿지 못했다. 사건 다음 날, 집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날, 마을 주민 몇 명이 시신을 수습하러 들어갔다. 그들이 말하길, 시체는 분명 안방과 거실에 있었는데, 잠깐 다른 방을 들렀다 다시 돌아오니… 시체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더 기이한 건, 그 순간 지하에서 들려온 ‘아이의 웃음소리’였다.

“엄마는 괴물이 아니야.”

그 웃음 뒤에, 속삭이듯 이런 말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 집은 사건 이후로 비어 있었다. 매물로 나온 적도, 수리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가끔 술자리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꺼냈다. 특히 붉은 문이 열리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같은 말을 했다.

“문이 열리면, 들어가지 마라. 돌아오지 못한다.”

 

윤지가 그 이야기를 처음 접한 건, 퇴직 통보를 받고 엿새째 되던 날이었다. 기자 생활 3년. 지방 취재부터 사회면 단신까지, 닥치는 대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뉴스의 가치가 클릭 수로만 판단되는 시대, 윤지 같은 고집 센 기자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편집장은 “요즘 애들은 다 프리랜서로도 잘 산다”며 웃었지만, 그 웃음 뒤의 무심함이 더 쓰렸다.

그날도 서울 지하철 안,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스크롤하던 윤지는 기사 하나에 손가락이 멈췄다.

[미제사건 파일] 십 년 전, 가족 몰살 사건의 진실

사진 속에는 낡은 목조주택의 현관이 찍혀 있었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붉은 빛이 화면에 번졌다.

기사는 담담했다. 사건 날짜, 사망자, 경찰의 결론, 그리고 남은 의문들. 하지만 끝부분 한 문장이 윤지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마을 사람들은 이 집을 ‘붉은 문’이라 부르며, 문이 열리면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한다.”

평소였다면 도시 괴담쯤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을 잃고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지금, 윤지에게 그 문장은 달랐다. 기자의 본능이 반짝이며 깨어났다.

 

그날 밤, 윤지는 술을 마시지도, TV를 켜지도 않았다. 방바닥에 앉아 사건 기사를 모조리 찾아 읽었다. 한 번뿐인 살인사건, 남편이 범인이라는 경찰 발표, 그러나 목격자의 증언 불일치, 시신 위치의 변화, 그리고 정체불명의 목소리.

지도 앱에서 위치를 확인하니, 기차로 세 시간, 버스로 40분, 다시 숲길을 걸어야 나오는 곳이었다. “참, 일부러 숨겨놓은 것 같네.” 윤지는 비웃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날 밤, 카메라와 녹음기, 손전등, 예비 배터리를 가방에 챙겼다.

다음 날 아침, 흐린 하늘 아래 윤지는 기차역에 내렸다. 역 주변은 조용했고,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버스 기사는 행선지를 확인하자마자 묘한 눈빛을 보냈다. “거기… 왜 가?”

“취재 때문에요.” 그 한마디에 기사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버스에서 내릴 때, 짧게 말했다. “집 앞까지 가지 마.”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작고 오래된 슈퍼가 보였다. 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노인이 윤지를 보자 표정이 굳었다. “혹시… 그 집 찾는 건 아니지?” 윤지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노인은 그녀의 가방과 카메라를 보고 더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문이 열리면… 절대 들어가지 마. 들어가면, 네가 누군지 잃어버린다.”

 

윤지는 마을을 지나 숲길로 접어들었다. 하늘은 더 어두워졌고,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붉게 물든 듯 보였다. 그 색이 단순히 석양 때문인지, 아니면 눈의 착시인지 알 수 없었다.

20분쯤 걸었을까, 나무 사이로 그 집이 보였다. 기사의 사진보다 더 낡았고, 더 음침했다. 창문은 여전히 검게 칠해져 있었고, 현관문은 절반쯤 열려 있었다. 틈새로…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윤지는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바람이 불었다. 바람 속에, 아주 작게 들리는 목소리.

“…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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