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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공포물] 붉은 문이 열릴때

by 곰탱이아재 2025. 8. 10.

 

1장 – 잊혀진 집

전자책 · 반전 스릴러 공포


프롤로그

을의 끝자락, 해가 저물어 가던 서울 지하철 안. 해고 통보를 받은 지 엿새, 윤지는 멍하니 휴대폰을 스크롤하다가 제목 하나에 손가락이 멈췄다.

[미제사건 파일] 십 년 전, 가족 살인사건.
사람들은 그 집을 붉은 문이라 부른다.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한다.

클릭 한 번. 화면 속 사진에는 이층 목조 주택의 현관이 어둠을 들이켠 채, 문틈에서 이상하게 붉은 빛이 스며 나왔다. 전구빛과는 다른 색. 윤지의 직업적 본능이 비상등처럼 켜졌다.

그녀는 노트북을 덮고 중얼거렸다. “좋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카메라, 녹음기, 손전등. 지도에는 기차 세 시간, 버스 사십 분, 그리고 시골길 도보 이십 분이 찍혀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세상과 끊어놓은 좌표.

마을의 경고

작은 슈퍼 앞, 담배를 피우던 노인이 그녀를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혹시… 그 집 찾는 건 아니지?”

대답 대신 미소. 노인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고개를 저었다. “문이 열리면 들어가지 마. 돌아오지 못해.”

과장 없는 목소리였다. 경고는 귓속에서 오래 울렸다.

현관의 붉은 틈

숲을 헤치고 도착한 집은, 창을 검게 칠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람도 없는데 문이 아주 조금 열리며 붉은 빛이 살결을 스쳤다. 윤지는 손전등과 카메라를 쥐고 문을 밀었다. 경첩이 끼익— 울고, 등 뒤에서 문이 스스로 닫혔다. 철컥.

먼지, 곰팡이, 썩은 나무, 그리고 희미한 금속 냄새가 한꺼번에 코를 찔렀다. 벽시계의 초침은 00:00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플래시를 터뜨리자 벽에 걸린 가족사진의 눈동자가 따라오는 착시가 스쳤고, 복도 끝 붉은 빛이 규칙적으로 깜빡였다—마치 신호처럼.

녹음 시작: “2025-08-10 / 오후 8:16 / XX군 XX리. 미제 가족 살인사건 현장. 내부 확인 시작.”


빈방, 폴라로이드, 그리고 말 없는 아이

첫 방. 허리 높이 긁힌 자국, 끊어진 끈 조각. 뒤집힌 소파 밑에서 윤지는 폴라로이드 한 장을 꺼냈다. 벽난로 앞에 등을 보인 남자, 발치의 검은 비닐, 그리고 손처럼 보이는 무언가. 사진 하단엔 볼펜으로 휘갈긴 글자 하나—미안해. 뒷면의 날짜는 2015.09.18.

다음 방의 옷장 천장에는 작은 금속 종이 달려 있었다. 문을 열면 ‘댕’ 하고 울리는 구조. 그 순간, 윤지의 녹음기가 스스로 재생 모드로 넘어갔다. 아이의 목소리가 어둠 속 콘크리트를 타고 흘렀다.

“엄마는 괴물이 아니야. 그날 그 사람을 죽인 건 엄마가 아니야…”

녹음 파일명은 000000.MP3. 생성 시간도 00:00.

현상실의 그림자

붉은 빛이 새던 방은 버려진 현상실이었다. 말라붙은 현상액, 집게에 매달린 사진들. 그중 한 장만은 유난히 선명했는데—복도에서 현관을 등진 검은 파카의 뒷모습. 카메라 스트랩, 어깨선, 머리 길이… 윤지는 그것이 자기 자신과 완벽히 같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진 하단엔 흘림체로 적힌 한 줄.

“문이 열리면, 너는 나다.”

그때 바닥에 ‘딱’ 하고 작은 열쇠가 떨어졌다. 숫자 3이 새겨진 열쇠.

붉은 빛이 스르르 죽어갈 때, 복도 벽지 뒤 금속 패널을 발견했다. 열쇠는 거기에 맞았다. 뚜껑 안에는 1·2·3 번호가 붙은 카세트테이프와 ‘엄마’라고 적힌 종이가 있었다.

테이프 1 — “엄마를 믿어줘”

플러그도 없는 플레이어의 녹색 램프가 홀로 켜졌다. 1번 테이프에서는 아이의 일기가 흘렀다. “오늘도 붉은 문이 열렸어… 아빠는 엄마를 괴물이라고 불렀어… 엄마는 말했어, 문이 열리면 절대 나가지 말라고…”

남자의 거친 욕설, 무거운 것이 쓰러지는 소리, 마지막으로 아이의 속삭임. “누군가 듣고 있다면… 엄마를 믿어줘.”

시계는 여전히 00:00에 박혀 있었다.

부엌의 글씨, 숨은 지도

부엌 싱크대에서 톡, 톡, 톡 물소리가 흘렀다. 유리창 안쪽에는 신선한 손바닥 자국이 김을 밀었다. 이내 글자가 맺혔다.

돌아가

찬장 속에서 현상액 병과 접힌 평면도를 찾았다. 1층·2층·지하 구조. 지하에 X가 세 번. 옆에는 ‘문이 처음 열린 곳’이라는 메모. 화살표는 부엌 뒤 좁은 틈을 가리켰다—숨은 계단, 지하로 이어지는 길.

지하 — 아이의 공책

작업대 위 공책.

엄마는 괴물이 아니야. 문이 열리면 사람을 바꿔.
나중에 누가 오면 엄마를 믿어줘. 그리고… 내 이름을 불러줘.

끝장에는 네 개의 숫자만 깊게 파여 있었다. 0 0 0 0 — 그 아래에 작은 글씨. 문이 열리는 시간.

작업대 서랍에서는 2번 테이프와 낡은 목걸이가 나왔다. 펜던트 속 흑백사진: 갓난아기를 안은 젊은 여자. 뒷면 글씨는 얼룩져 ‘서—’까지만 남았다.

그때 계단 위에서 맨발 발자국이 멈췄다. 아이 같은, 그러나 어른도 아닌 목소리가 속삭였다. “…들어왔네.” 한참 후, 기척은 복도 쪽으로 멀어졌다.

테이프 2 — 문을 두드리는 자

테이프는 똑, 똑, 똑 노크로 시작했다.

남자: “문 열어. 난 괴물이 아니야.”
아이: “엄마가 열지 말랬어.”
남자: “엄마는… 이미 거기 없어.”

낮고 길게 끄는 웃음이 끼어들자 붉은 빛이 꺼졌다 켜졌다. 테이프는 바닥을 끄는 소리를 남기고 멈췄다.

붉은 문 앞

붉은 문은 이 집의 구조와 맞지 않았다. 원래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는 문.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플래시 하나에 사진이 두 장 나왔다. 하나는 문틈, 또 하나는 복도 반대편에서 문 앞의 윤지를 찍은 사진. 타임스탬프는 00:00, 기종은 십 년 전 모델명.

문틈은 체온처럼 미지근했다. 그때 아이의 목소리가 귓속을 간질였다. “이름을… 불러줘.”

방 안 바닥의 분필 원에서 가느다란 선이 복도 쪽으로 뻗어 액자 앞에서 멈췄다. 가족사진의 얼굴은 얇게 도려내져 있었고, 특히 어머니의 눈동자만 유난히 깊고 검었다. 액자 틈에는 종이 한 장—널 기다렸어.


2층으로

라디오 없는 라디오가 잠깐 켜졌다. “—용의자 윤—” 마지막 음절이 찢겨 나갔다. 현관문은 안에서만 열리는데, 딸깍 하고 스스로 빗장이 풀렸다. 밤공기가 빨려 들어오듯 집 안을 훑었다.

윤지는 물러섰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메모를 정리했다. 3 열쇠, 0000, 사진 속 ‘자기 자신’, 그리고 반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분필 문장.

그때 위층 난간에서 다른 열쇠가 ‘툭’ 떨어져 발끝에 멈췄다. 이번에는 숫자 0.

거울의 집

2층 마지막 방. 벽 한 면을 채운 전신거울 속의 집은 미묘하게 달랐다. 거울 속 복도에는 붉은 문이 없고, 대신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문턱을 막 넘으려는 검은 파카의 뒷모습. 윤지가 손바닥을 대자 얼음 같은 유리가 서서히 따뜻해졌다. 거울 속 입술이 소리 없이 말했다.

어서 와.

찰나, 거울 속 현관문이 ‘철컥’ 닫혔다.


후반 — 0과 3의 문장

복도로 나오자 바닥 카펫 아래서 단단한 것이 발에 걸렸다. 들어 올리니 얇은 금속 패널. 네 자리 숫자 다이얼과 열쇠 구멍이 두 개. 하나엔 0, 하나엔 3 모양의 홈이 파여 있었다.

윤지는 두 열쇠를 동시에 눌러 꽂았다. 다이얼은 네 자리. 답은 이미 주어져 있었다. 0-0-0-0. 마지막 링을 0에 맞추자, 집 전체가 낮게 숨을 쉬었다. 패널이 열리고 안에서 오래된 서류 봉투가 나타났다.

봉투 표지: XX경찰서 / 2015-09-18 / 현장기록 사본. 맨 위 장에는 볼펜으로 급히 끌로 쓴 듯한 줄이 있었다.

피해자: 서○○(모)    아동
가해자: 배우자미상

붉은 볼펜으로 수정된 화살표가 중첩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몇 번이나 바꾸려 한 흔적.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 구석에는 낯익은 필체로 메모가 있었다.

“반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 문이 열리는 시간(00:00)에 기록은 거울을 따른다.”

윤지는 거울 방으로 뛰어 돌아갔다. 거울 속 집의 현관이 다시 열려 있었다. 이번엔 거울 저편 복도 바닥에 흰 종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카메라로 줌을 당기자 글씨가 또렷해졌다.

윤지. 너 돌아왔구나.

그녀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실제 복도 끝 문틀 위에도 같은 글씨가 분필로 새겨지고 있었다—누군가가 지금 막 쓰는 것처럼 가루가 떨어졌다.

테이프 3 — 첫 개방

현상실로 돌아와 3번 테이프를 눌렀다. 휘이이— 바람이 마이크를 스친다. 이어서 어린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가 문을 막고 있어. 아빠가 웃고 있어. 빨간 빛이 방으로 흘러 들어와.
만약 누가 오면, 내 이름 불러줘. 문은 이름을 먹어.”

그리고 탁— 소리 뒤에 낮은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아주 잠깐 스쳤다. 숨처럼 가벼운 한 마디.

“서…”

녹음은 거기서 끊겼다.

붉은 문, 처음의 열림

복도 끝 붉은 문이 스스로 ‘스르륵’ 열렸다. 문지방 안쪽 바닥에는 분필로 그려진 원과 끈, 작은 종. 원의 한 켠에는 비어 있는 빈칸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이름을 기다리는 서명란처럼.

라디오 없는 라디오가 마지막으로 말을 이었다. “오늘 XX군 가족 살인사건… 용의자 윤—” 잡음. 그리고 깔깔대는 남자의 웃음이 배경을 적셨다. 웃음은 어느새 바로 귓가로 옮겨와 있었다.

윤지는 문지방 앞에서 멈췄다. 이 문은 ‘밖’과 ‘안’을 갈라놓지 않았다. ‘전’과 ‘후’를 바꾸는 문이었다. 0과 3—끝과 시작, 닫힘과 열림. 그녀는 이름을 떠올렸다. 공책의 마지막 문장. 내 이름을 불러줘.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서…”

그 순간, 집 안의 모든 시계가 동시에 살아났다. 초침이 0 → 1로, 1 → 2로—아니, 아니었다. 눈앞에서 숫자들은 뒤집혀 움직였다. 0이 3으로, 3이 다시 0으로. 발밑에서 얇은 진동이 올라왔다.

문은 조금 더 열렸다. 윤지는 카메라를 들어 올렸고, 셔터가 스스로 눌렸다. 찰칵. 프리뷰에는 붉은 방 한가운데 흐릿하게 웃는 아이가 찍혀 있었다. 그런데 프리뷰가 사라지기 전에, 화면 모서리에 흰 글씨가 나타났다.

어서 와, 엄마.

윤지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지만, 등 뒤에서 현관문이 ‘쾅’ 하고 닫히며 집 전체가 잠겼다. 동시에 2층 거울방에서 같은 순간 또 다른 셔터음이 울렸다. 거울 속 복도에 서 있던 검은 파카의 뒷모습—그가 고개를 돌렸다.

클리프행어 —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

붉은 방 바닥의 빈칸에, 분필 글씨가 저절로 새겨졌다. 첫 획, 둘째 획, 마지막 점. 이름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윤지는 그것이 자신이 잃어버린 어떤 성의 시작이라는 걸 알았다. 서—.

집이 한 번 더 숨을 쉬었다. 종이 울렸다. 댕. 붉은 문이 찰나 닫히며, 현관의 빗장도 동시에 올랐다. 안과 밖, 전과 후, 가해자와 피해자—모든 쌍이 한순간 서로의 자리를 바꾸었다.

윤지는 깨달았다. 소문은 틀리지 않았다. 이 집에 들어온 사람은 돌아가지 못한다. 돌아갈 ‘자기 자신’이 바뀌기 때문이다.

— 2장 “초대받은 증언”에서 계속 —